Press Release

조선일보 2011-09-29

엄마, 청바지 사달라는 아들에 “네가 벌어서 사라” 아들, 컵라면 팔아 돈 모았으나 아까워 못쓰고 기부

[자본주의 4.0 제2부 나누는 사람들] <4> 돈보다 값진 정신적 유산―송경애 BT&I 대표
250만원 들고 차린 여행사, 年매출 2600억짜리로 키워
남들 등록금 대주던 아버지, 자식에겐 1원도 쉽게 안 줘… 그런 정신 마음 깊이 간직


김포공항에 서서 외국인만 보면 무조건 다가가 명함을 건넸다. "한국에 사세요?" 외국에 살다 한국에 잠깐 다니러 왔다는 사람은 그냥 보냈다. 한국에 살면서 외국에 드나든다는 사람에겐 "다음에 항공권 살 때 꼭 연락 달라"고 했다. 송경애(50) BT&I 대표는 1987년 7월, 단돈 250만원으로 서울 이태원에 여행사를 차렸을 때 이렇게 현장 영업을 했다. 공항에서 전단 뿌리고 명함 돌리며 발품 팔아 키운 회사가 지금은 직원 200여명, 연매출 2596억원, 항공권 판매 실적 국내 4위다(한국일반여행업협회 2010년 통계).

회사가 크는 동안 아이들도 자랐다. 장남 유진영(19)군은 대학교 1학년, 차남 현진(18)군은 고3이다. 송 대표는 아이들이 지금보다 어릴 때부터 누누이 강조했다. "공부는 끝까지 시켜주마. 하지만 유산은 한 푼도 없다."

애써 키운 회사인데 왜 안 물려주는지 묻자 송 대표는 "회사를 왜 자식에게 물려주느냐"고 되물었다. "이 회사는 제 사유물이 아니에요. 코스닥 상장 회사니까 저는 지분 7%를 가진 주주이자, 지금 경영을 맡고 있는 CEO일 뿐이에요. 경영권 물려줄 생각 없어요. 제 재산도 아이들 개인에게 물려주지 않고, 아이들 이름으로 공익재단을 만들어 좋은 일에 쓰이도록 유도할 겁니다."

유산 기부는 자기 인생에서 얻은 것들을 다시 돌려줘 우리 사회를 더 따뜻하게 만들고 부모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가르침이자 인생의 선물이라는 것이 송 대표의 생각이다. 아들은 이런 엄마에 대한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송경애 대표가 경기도 광주에 있는 지체 장애인 시설 한사랑마을을 찾아 아기를 돌보고 있다.
송 대표는 매년 송년회 대신 직원들과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10억원을 기부한 송 대표는 두 아들에게 유산(遺産)을 물려주지 않을 계획이다. /BT&I 제공


①라면 사건="미국에서 고등학교에 다녔어요. 유명 브랜드 '디젤' 청바지가 간절하게 입고 싶었어요. 엄마가 단칼에 잘랐어요. '뭐? 400달러? 네가 벌어서 사라'. 궁리 끝에 한국 할인마트에서 컵라면을 이민 가방 꽉 차게 사들였어요. 기숙사에 라면 매대를 차리고 야식 찾는 친구들에게 개당 5달러에 팔았어요. 아등바등 1000달러를 모았는데 아까워서 도저히 청바지 못 사겠더군요. 고민하다 어린이재단에 기부했어요."

②BMW 사건="대학 갈 때 엄마에게 '미국 대학생은 다 차가 있다. BMW 모는 친구도 있다'고 했어요. '뭐? BMW? 네가 벌어서 사라. 내가 너한테 사줄 수 있는 차는 이게 전부다'. 그러면서 엄마가 제 손에 건네준 게 장난감 BMW 모형이었죠. 알고보니 그나마 돈 주고 산 게 아니라 고객에게 받은 판촉물이었어요."

송 대표는 회사가 지금보다 작을 때부터 지금까지 10억원 넘게 기부했다. 지난해 아너소사이어티도 가입했다. 우리 나이로 쉰 되는 해인 데다가 결혼 20주년 되는 해였다.

"우리 부부는 서로에게 다른 선물은 전혀 안 했어요. 1억으로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사면 한두 번 기쁘고 옷장 속에 들어가겠죠. 기부는 평생 추억이 되잖아요."

송 대표의 기부 동기는 두 가지, 측은지심과 행복감이다. 대학 때 학교 앞에서 하반신을 끌며 기어가는 걸인을 보고 마음이 불편해 쩔쩔매다 결국 그 자리에 돌아와 점퍼를 사준 적이 있다.

아버지도 그랬다. 어린 시절 송 대표 집에는 "등록금 대줘 감사하다"고 인사하러 오는 손님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자식에겐 박했다.

"아버지는 '쓸데없는 돈은 1원도 안 준다'고 했어요. 학창 시절 귀걸이 사달라고 했다가 꾸중만 듣고, 어떻게든 갖고 싶어 피자집에서 아르바이트했어요. 야채 썰며 불평했지요. '남 줄 돈, 나 주지…'. 철들고 보니 아버지가 맞아요. 세상은 그렇게 사는 거예요. 비록 어릴 때는 아버지를 원망하기도 했지만, 아버지 정신만은 마음 깊이 간직하고 살아왔어요."

기사원문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9/29/2011092900217.html